훈련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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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는 10살입니다. 10살 아이의 모습(심성을 가지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천진난만(天眞爛漫)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② 육의 생각을 탈피하고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는 죄로 인한 타락으로 잘못되어진 의식의 구조가 너무도 많다.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믿음을 정립할 수 없으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해 주신 대뇌의 기능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면, 이러한 관념의 버림의 과정은 갖지 않아도 무방하나,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한 죄의식을 빼어버려야 소기의 훈련 성과를 온전히 달성할 수 있다.

③ 신뢰(하나님을 신뢰, 자기의 대뇌 신뢰, 속독을 가리키는 목사님(남) 신뢰- 하나남 신뢰). 
무엇보다도 “믿음의 정립”이 필연적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가를 탐색해야 할 것이다.
그 믿음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롬 4:18)고 한다. 즉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속독을 통하여 독서의 기능을 100배-1,000배 향상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바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바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또한 우리의 훈련되어지는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게 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며,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속독의 기능을 우리 스스로가 개발하여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 고정된 의식에서의 탈피로부터 마음의 세계, 즉 생각의 세계와 영적세계로 향한 대방향전환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초고성능인 대뇌에 대한 자기 신뢰로부터의 출발이며 지속적인 독서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 과정을 통하여 결실을 누리게 된다. 우리에게는 문자와 단어와 문장을 뜯어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빛으로 들어오는 문자의 뜻을 빛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않고 그것을 소리화하여 이해하려는 습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음성화하려는 ‘소리 의식적 노력’이야말로 속독을 방해하고 불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음성의 초속 344m의 속도가 빛의 초속 300,000,000m의 엄청난 속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리를 무시하고 음독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약 872,000배에 달하는 빛의 속도에 대한 도전이 우선이다.
소리의 속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초음속의 가속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초음속의 가속을 위해서 우리는 고정관념의 잘못된 의식의 짐을 벗어 던지고, 우리의 마음에 믿음의 불을 가해야 한다.

④ 걱정(염려)
그리고 모든 염려를 예수님께 맡겨 버리고 시도해야 한다.
염려를 주님께 “맡겨서”는 안 된다. “맡겨 버리는” 것이 긴요(緊要-중요)하다.
맡겼다가 찾고 다시 맡겼다가 되찾는 일이 거듭되다 보면, 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찾으면 은행의 이자가 붙어서 그 원금이 점점 더 커지는 것과도 같이, 염려가 더욱 커질 뿐이고,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주신 것을 회복하는 훈련이다.

⑤ 한다
하면 된다.